시월 (이문재 시인)

2014-10-27     경남일보
시월 / 이문재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지천으로 늘어선 이파리들에 서리가 차갑다, 시간의 중력은 아래로만 꺼 짚어 내리고 그래서 한때의 시절은 단풍으로 곱다, 비워야 가벼워지는 산술은 쉽지 않지만 살아온 내력을 다 벗어버려야 투명해지는 계절, 아직은 가을이고 싶고 이끌림에 버티는 아랫도리는 벅차지만 중력은 하나씩 하나씩 거두어 간다, 아슬해진다.( 주강홍 진주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