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十八番)’ 말 안 쓰기

이수기 (논설고문)

2014-10-30     경남일보
좋아하는 노래를 일컫는 ‘18번(十八番)’이란 말은 일본의 대중연극 가부키(가무기·歌舞伎)에서 유래됐다. 가부키의 원조배우인 이치가와 단주로의 7대손이 가부키의 막간에 공연하는 풍자소극 중 재미있는 것을 18가지로 정리했다. 이를 ‘교겐(광언··狂言) 18번’이라고 부른다. 가부키에서 장이 바뀔 때마다 막간극을 공연했는데 17세기 무렵 이치가와 단주로 라는 가부키 배우가 단막극 중에 크게 성공한 18가지 기예를 정리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가부키 ‘광언(狂言) 십팔번(十八番)’이라고 불렀다.

▶일본말로 ‘18번’은 ‘주하치방’이지만 상자를 뜻하는 ‘오하코(おはこ)’로도 읽힌다. 뛰어난 재능을 가리킬 때 ‘오하코’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18번’이 자주 부르는 노래, 자신 있는 특기 등의 뜻으로 전용돼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지게 됐다.

▶노래방이나 술자리, 회식장소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십팔번’이라는 말이 있다. ‘일번’도 아닌 하필 ‘십팔번’인지 의심스러운 때가 있다. ‘십팔번’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장기, 애창곡’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18가지 기예 중에 18번째 기예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하여 ‘십팔번’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생활용어 순화집(1995년)에서는 ‘십팔번’ 대신 ‘단골장기, 단골노래’란 말을 쓰도록 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 많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 ‘애창곡’이라는 말도 함께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젠 ‘18번’ 말은 안 쓰는 것이 좋다.
 
이수기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