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로 여는 아침] 담쟁이 넝쿨

2014-10-31     경남일보
10.31디카시
[디카시로 여는 아침] 담쟁이 넝쿨

 

담쟁이넝쿨- 최 종 천



담쟁이넝쿨이 그린 담쟁이넝쿨이다
넝쿨이 넝쿨을 그렸을 뿐인데,
시멘트 벽에도 혈관이 흐른다


폐렴에 걸린 어느 젊은 예술가가 창문 너머로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담쟁이 이파리를 보며 자신의 목숨도 곧 저러하리라며 절망하던 날들이 있었다. 술에 전 채 평생 변변한 예술작품 하나 남기지 못한 늙은 화가는 그렇게 스스로 절망하는 젊은 예술가를 위하여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밤, 떨어진 잎새 자리에 마지막 잎새 하나를 그려 놓고 죽었다. 다음 날 모진 비바람에도 살아남은 그 잎새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젊은 예술가는 생의 희망을 갖는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내용이다. 회벽의 도시에 핏기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저 이파리 하나하나가 모두 희망이고 목숨이다. 이 가을, 스스로의 안팎을 추슬러 내가 누군가의 마지막 잎새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