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김영남 시인)

2014-11-09     경남일보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 위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

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

튕겨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

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

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

그것은 저 빈 들녘의 허수아비 몫으로만 남게 하라.

더 이상 지는 잎에까지 상처받지 않고

푸른 하늘과 손잡고 가고 있는 길 옆 들국화처럼

모두가 시인이 되어서 돌아오게 하라.



벌에는 나락의 밑둥이 베여지고 두둑에는 국화가 만발하는데

귀뚜라미는 가을은 채촉하고 새벽 서리는 겨울을 바쁘게만 한다

한 여름의 열정이 아쉬운 아직 아물지 못한 것들.

남아야 할것과 쓰러져야 할 것들의 경계에서

저울의 눈금은 냉혹하다

추억은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에 간결해야 한다

아쉬움은 바람에 걸어두고 저무는 이 계절처럼

속빈 갈대도 시인이 되라 하지 않는 가

저무는 것들은 모두 간결이 아름다워야 한다,

이슬로도 만족하는 저 들국화 처럼.

(주강홍 진주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