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담쟁이 (정찬일 시인)

2014-12-07     경남일보
저 수많은 잔뿌리 좀 봐

담쟁이가 꿈 속을 오르고 있어

길 한 모퉁이 콜타르 먹인 판자를 차고

하늘을 오르는 담쟁이 좀 봐



판잣집도 오래 견디다 보면

잔뿌리 내리며 담쟁이가 오르고 있어

오르는 일만으로도 한 생애를 다 보낼 수 있겠군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수맥이 다 마른 담쟁이의 아랫도리

그 아래로 하교길 아이들의 웃음소리

내 어릴 적 울음소리도 가끔씩 들려



내게도 길이 있었지

무심히 자란 계절의 그림자를 다 떨치고

딱딱한 겨울 햇살 속으로

푸른 실핏줄을 다 드러낸 담쟁의 길



불량한 겨울 바람이 지나다가 톡 건드리면

줄기 끝으로 차올린 생장점들이 잠에서 막 깨어나

한 계절 파랗게 터뜨려버릴 것 같은 담쟁의 길



*세상이 찬바람에 얼어붙었다, 잔뿌리를 내리며 더 높은 곳으로 향하든 한 때의 희망도 얼어붙었고 툭 걷어찬 돌멩이에 체이는 발가락 끝만 더 아프다, 벼랑을 오르는 담장이 성장점처럼 푸르게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기개였지만 시방은 추위에 덮여 있다. 휑한 지푸라기같은 삶의 쪼가리들.. ( 주 강홍 진주문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