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계단을 밟자

황상원 (창원대학교 대외협력팀)

2014-12-08     경남일보
오늘은 고백으로 글을 열겠습니다. 결혼 직후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가 월급의 1%를 아동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리 상의를 좀 하지 그랬어?”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저의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뜻밖의 반문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크면 잘했다고 칭찬해주지 않을까?”

결혼 전부터 해오던 일을 관성적으로 계속한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데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기부에는 인색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유태인들에게는 ‘자선의 황금계단’이라는 자선의 8단계가 있습니다. 주고 나서 후회하는 단계가 가장 하책이고, 미리 자선을 베풀어 빈곤을 면하게 하는 게 최상의 단계입니다. 탈무드에서는 “기부자나 수혜자 모두 서로를 모른 채 도움을 주고받는 것과 받는 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도와주는 것이 최상”이라고 가르칩니다. 탈무드는 비록 가장 낮은 단계의 선행이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강조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자선의 황금계단에 발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아내의 기부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달 1만원씩을 또다른 아동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주기는 하지만 요청하지 않을 때는 주지 않는’ 3단계 정도입니다. 하지만 단계가 뭐 크게 중요하겠습니까. 유태인들이 자선의 단계를 나눈 것도 결국은 나눔과 베품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천년 제국인 로마의 힘도 사회 지도층의 기부와 사회 공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지성에서는 그리스, 체력에서는 켈트나 게르만,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보다 뒤졌던 로마가 오랫동안 거대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회지도층의 역할이었다”고 썼습니다. 로마 귀족들이 공공시설 건설에 개인 재산을 흔쾌히 희사했고, 빈곤 퇴치에도 많은 돈을 기부했다는 것입니다.

곁에 있는 아내에서 시작해 멀리 로마까지 나갔습니다. 올 겨울 추운 곳에 계신 분들을 위해 자선의 황금계단에 오르는 것도 퍽 좋을 것 같습니다.

 
황상원 (창원대학교 대외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