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1일 화요일(3면) 록지다방

2014-12-14     허훈
1960년대 우리네 삶은 정말 팍팍했습니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느라 무척 힘겨웠습니다. 학생들은 점심을 거르기 일쑤였고, 허기진 배는 물로 채워야 했습니다. 귀하디귀한 학용품은 보물이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몽당연필’을 볼펜 대에 끼워 쓴 추억을 기억할 겁니다. 집집마다 책상맡에 놓인 빨간 돼지저금통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가는 수호신이었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했지만 이웃 간의 정은 넘쳐났습니다. 겨울철 김장을 담가 앞집 뒷집 나눠먹던 인정표 김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50년 전 신문광고를 통해 그 시절의 생활상이 묻어나는 추억의 여행을 떠나봅니다. /편집자 주
 
1964년 12월 1일 화요일(3면) 록지다방

‘여러분의 安息處’란 글귀와 함께 ‘록지다방’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당시 다방은 참 인기 많았습니다. 뜨거운 물에 대추나 잣을 띄우고 달걀노른자를 넣은 쌍화차는 최고급 메뉴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다방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며 소일하곤 했지요. 그 탓에 애꿎은 엽차만 줄기차게 들락거렸죠. ‘진주방송중계소 개소기념, 男女 新人歌手歌謠 콩쿨’ 광고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가수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이기도 했으니까요. 자신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귀와 코, 목구멍에 탈이 생기면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半島耳鼻咽喉科醫院’ 전문의 진료에 환자들의 발길이 끌렸겠죠.
 
[경남남일보 광고로 보는 그때 그 시절] 프리랜서 허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