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2014-12-18     경남일보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취락 입지는 배산임수나 곡구(谷口)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취락의 명칭에 ‘골’자가 붙는 경우가 많다.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가 살기 좋은 곳이다.

▶풍수사상은 고구려나 백제의 고분에 그려져 있는 네 방위를 다스린다는 상징적 동물 사신수(四神獸)에서 추적한다.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명당 혹은 길지라는 의식 속에는 ‘땅’의 기운, 즉, ‘지기(地氣)’라는 개념이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중국에 풍수지리사상이 있다면, 한국고유 취락입지사상에 ‘두모’가 있다. ‘두모’는 한민족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동이족들이 마을을 만들고 도읍지를 정할 만한 신성한 땅을 가리키는 말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와 일본 열도에 걸쳐 오래전부터 널리 분포하고 있다. ‘두모’는 풍수사상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와 좌청룡우백호의 형상을 갖추고 있어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고 농사 짓기에 매우 적합한 땅을 말한다.

▶중국 풍수사상은 자손대대로 이어질 부와 권력을 위한 명당을 열망하는 탐욕이 엿보이나 ‘두모’사상에는 그러한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대조다. 중국풍수에 미신적 요소가 너무 깊숙이 가미되어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거나 묘지의 입지로서 명당만을 탐하는 일종의 지술로 변질되었고. 이로 인해 정상과학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금의 시기에 ‘두모’사상의 존재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