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이 많은 꽃봉오리

2014-12-25     경남일보

 

<이 많은 꽃봉오리 끌고> -이기영



앞만 보고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한순간, 눈앞이 천 길 낭떠러지다

허공에 길 내며 다시 또 가는 수밖에.



‘꿈’이란 게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님을 사춘기를 겪으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그때의 꿈이란 건 고작 ‘집에서 벗어나는 것’, ‘크리스마스를 여자친구랑 보내는 것’, ‘좋은 대학 가는 것’, ‘여자친구랑 여행 가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정도였던가 보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하고, 나를 닮은 혹은 아내를 닮아도 좋은 아들딸을 낳고 사는 일, 그 정도의 삶이면 되겠다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하여 남은 생을 ‘앞만 보고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생의 곳곳에 ‘천 길 낭떠러지’가 크레바스처럼 숨겨져 있음을 매번 깨닫는다. 그러나 어찌하리.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지언정 ‘허공에 길 내며 다시 또 가는 수밖에.’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시지프스’처럼 측량할 길 없는 막막함들과 맞서야 한다. 또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같은 하루하루를 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