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황상원 (창원대학교 대외협력팀)

2014-12-29     경남일보
며칠 전 ‘초콜릿 도넛’이라는 미국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초콜릿 도넛을 좋아하는 마르코의 이야기입니다.

마르코는 다운증후군 소년입니다. 마르코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아동보호시설에 가게 되지만, 초컬릿 도넛만큼이나 좋아하는 인형을 안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옵니다.

몰론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 대신 마르코를 맞이한 사람은 옆집에 사는 루디입니다. 동성애자인 루디는 역시 동성애자인 검사 폴과 함께 삽니다. 연인인 이들은 마르코를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여기고 양육권 소송에 나섭니다.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열린사회’를 자처하는 미국조차 ‘그 적들(동성애자의 제3자 양육이라는 편견)’을 깨는 게 쉽지 않았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루디와 폴은 패소하고, 마르코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의 생활이 좌절된 채 다시 아동국 직원의 손에 끌려 갑니다. ‘스포일러’ 문제로 영화 이야기는 이쯤에서 관두겠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노명현 교수님의 장남인 태준 씨 역시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준 씨는 2011년까지 13년 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시를 쓰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수준급 그림실력으로 2차례의 개인전까지 열었습니다.

지적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노인복지학을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습니다.

13년 동안 써내려간 태준 씨의 일기가 2011년에 멈춘 것은 서른을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기 때문입니다.

폐암 투병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름다운 청년’ 노태준의 일기는 가족들에 의해 ‘미소 천사의 일기장’이란 책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인간의 눈물샘이 퇴화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책들과 그 주인공의 치열한 삶 때문이 아닐까요.

마르코와 태준 씨의 공통점은 ‘미소 천사’입니다. 웃음이 그야말로 해맑습니다.

2015년 을미년이 밝아옵니다. 새해는 장애에 사로잡힌 선입관을 풀어주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황상원, 창원대학교 대외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