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겨울 숲길 (박호민)

2015-01-22     경남일보

 

<겨울 숲길> -박호민


숲은 애써 말하지 않는다

그냥 와서 느끼라고만 할 뿐



생이 어찌 어둡기만 할 것인가

가끔은 이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움의 빛살 한 줌 풀어놓는 것을.



‘생이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님’은 세상 좀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저 어둑한 숲길로 선뜻 걸음을 떼어 놓는 일은 두렵기만 하다. 저 길의 어디쯤에 ‘그리움의 빛살 한 줌’ 풀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 생에도 그 어디쯤 ‘사무치도록’ 환한 빛살 한 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환한 빛살에 제때 당도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늘 우리의 첫발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아직 그 자리 그 빛살이 남아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저리 환한 자리를 두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애만 태우고 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해는 산을 넘는다.

새해도 스무 날이 지났다. 아직 해가 산을 다 넘기엔 삼백여 날이 넘게 남았다. 기꺼이 첫발을 떼어 숲으로 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