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평 텃밭의 꿈

박종현 (시인 삼현여중 교사)

2015-02-08     경남일보
<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 갈며 꿀벌통 하나 두고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라.>


 

어린 시절 읽었던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는 늘 필자에게 설렘과 고민을 안겨준 글이다. 농촌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들어가 살아보면 그곳은 생존을 위한 고통으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이다. 하교 후, 늘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들일을 해야 했던 필자에겐 농촌은 ‘아름다운 풍경’의 이미지보다는 ‘고난’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과 고통의 의미로 남아있던 농촌, 즉 고향이 요즘 들어 자꾸만 ‘풍경’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농촌이었는데, 이제 그곳에서 작은 텃밭 하나 일구며 사는 것이 하나의 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해 가을, 잘 아는 지인의 배려로 선학산 자락에 묵정밭을 빌려 텃밭을 일구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비록 다섯 평 남짓 되지만 필자의 꿈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노둣돌처럼 소중한 텃밭이다. 개망초, 달맞이 등 키를 넘는 잡초를 베어 낸 땅에 곡괭이로 이랑을 타서 거름을 듬뿍 흩뿌린 뒤, 시금치와 상추, 겨울초 씨를 뿌렸다. 그 다음 날부터 퇴근할 때마다 이 세상 가장 소중한 텃밭으로 가서 물을 주며 채소들의 싹이 나는지를 살폈다. 1주일쯤 지나자 세상에, 참새 혀 같은 싹들이 텃밭 가득 돋아나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어둠살이 길을 덮을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심은 지 보름쯤 지난 11월말, 갑자기 추위가 몰려오자 잘 자라던 새싹이 파랗게 질린 채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았다. 혹시 얼어 죽을까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웃 사람들에게 물으니, 비닐이나 짚으로 덮어야한다기에 아내와 함께 솔밭에 있는 갈비를 긁어모아 이랑 위에다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매일 갈 때마다 덮어놓은 갈비를 들추면 새싹들은 얼어 죽지 않고 빠끔히 나를 올려다본다. 정말 고맙기도 하고, 철늦게 씨앗을 심은 주인 때문에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겠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이 세상 가장 넓고 소중한 다섯 평짜리 텃밭엔 시금치, 상추, 철지난 겨울초가 다투어 봄소식을 전할 것이라 믿는다. 곡식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봄이 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교단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열어갈 필자와 함께 어린 새싹들의 새로운 꿈이 텃밭 가득 푸르러갈 것이라 믿는다.

박종현 (시인 삼현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