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철이의 바다(조영래)

2015-02-26     경남일보
<철이의 바다> 조영래





부모는 해초를 말렸지만

늘 피가 마르고 돈이 말랐다

그래도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소년은 미역 마르는 철에

부쩍 철이 들었다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서민들의 나날살이에는 늘 돈이 마르면 피가 마르는 법이다. 부모님의 그 애타는 심정을 겨우 조금이라도 헤아리기 위해선 ‘소년’들이 ‘부모’가 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 ‘아비’는 마주 앉은 ‘소년’이 마냥 대견하기만 할까? 남들처럼 학원이라도 한 군데 더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오히려 저 미역처럼 꾸덕꾸덕 쪼그라들고 있진 않을까?

요즘 들어 환한 햇살이 부끄러워지는 날들이 잦다. 이 자본의 시·공간들이 몹쓸 것임을 잘 알면서도 어쩌자고 자꾸 자본주의의 폐인으로 메말라가고 마는지. 자본주의의 폐인임을 거부하는 생활태도에 대해 ‘자식을 생각지 않는 철 안 든 부모’라는 주변의 걱정에 당당하지 못한 까닭이리라. ‘철이 든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본주의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