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봄날 (양곡시인)

2015-03-02     경남일보
봄날 (양곡 시인)


앙상한 정신의 뼈마디로

 
이제는 무든 것이 끝났구나 생각될 때
 
풀뿌리조차 얼어붙어 이제는 정말
 
일어설 수도 없겠구나 생각될 때

그대는 꽃샘추위처럼 나에게 찾아온다

길가에 산수유꽃을 노랗게 피우며, 점심때

유치원 정문 앞에서 만났던 아지랑이가

골목길 모퉁이를 아롱아롱 돌아드는 오후 세 시쯤

아무에도 알리지 싶지않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던

강건너 잔설이 얼룩진 산자락의 기억

마루 끝에 앉아 눈이 아프게 바라볼 때

그대는 산토끼들을 멸망시킨

들고양이들처럼 마당을 가로질러

무릅걸음으로 나에게 찾아온다



잔설에 묻어두었던 날카로운 기억은 황폐히 뼈마디를 들어내고
생의 직벽은 가파르기만 하다, 어둠이 서툴었던 첫 경험의 그 밤처럼
밀쳐도 밀쳐도 새 순이 돋는 이 잔인한 봄날, 어디서 한바탕 소동을
일어키고 봄날을 이겨서 돌아오는 것인가 (주강홍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