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등뼈

2015-03-19     경남일보

 

<등뼈>-이 기 영


물 빠진 바다에 와서야 바다도
등뼈를 가졌다는 걸 알았다.
저 등으로 져 나른 물길이 어디 한두 해였을까.
들고 나는 모든 목숨이 저 등을 밟고 왔겠지.
오늘 내 등 밟고 가는 이 누구신가.

 


바다는 지구 생명체의 근원이다. 최초 생명체의 출현이 대략 35억 년 전이라고 하니, 이는 인류가 저 바다의 등뼈를 건너오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 35억년에 비하면 근대 이후 300여 년쯤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그 찰나의 시간이 저 단단하고도 가지런한 등뼈를 헝클어뜨리고 있다.

오래도록 공들인 것이 헝클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자신의 목숨을 낳아 기른 근본을 해하는 것을 ‘폐륜’이라 한다. 하루하루 폐륜의 시간들이 쌓여가지 않도록 사소한 몸가짐 하나에도 마음을 쓸 일이다. 그리하여 이후로 또 무수한 생명들이 다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등뼈를 가지런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