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살아가는 길

양곡 (시인)

2015-04-22     경남일보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 시인친구’ 한다. 이 말 속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숨어 있다. 시 쓰며 산다더니 어떻게 사니, 아직도 그까짓 시를 쓰면서 살고 있니, 다들 밥도 먹고 살기조차 힘든 세상에 니가 한다는 그 문학이란 어디에 무엇으로나 쓰는 거니 등등.

학문하는 자세로 나는 시를 시작했던 것 같다. 읽고 배워서 깨달은 바, 깨친 바를 시험문제 풀듯 글로 써내는 일에 시의 형식을 빌려 썼던 것 같다. 대학생 때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주인이 ‘시를 쓰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들 아닌가’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를 알기 위해 시를 찾아 읽고, 시인을 찾아다니며 시를 비롯한 문학을 공부했다. 그맘때쯤에 어떤 여자애로부터 ‘그래. 너는 평생 시나 쓰며 그렇게 배고프게 혼자서나 잘 살아봐라’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쓴 글은 시가 될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시만 쓰며 산다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법도 세상에는 없다는 걸 알았고, 시만 쓰면서 혼자서 평생을 살 수도 없는 게 세상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 역사의 진화나 발전을 이끄는 문화나 문명은 언어를 매개로 한 수레바퀴를 굴려서 간다. 언어를 다루는 것이 문학이고 문학의 기본이 시다. 시인은 시시각각 만나는 하나의 사실이나 사건을 보고 순간의 감성과 판단으로 생명의 처음과 끝을 유추해낼 수 있어야 하고, 시간의 과거와 미래를 순간적으로 통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시인은 항상 대중들보다 앞장서 가면서도 가장 뒤에 남아 인생살이의 파장을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이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서도 배가 부르다고 노래할 줄도 알아야 하고, 불치의 병을 안고 밤낮 신음을 할지라도 삶의 즐거움과 인생의 찬란함을 언어로써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평생 시를 쓰고서도 좋은 시 한 편 못 남긴다고 좋은 시인이 못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시인이라고 좋은 시를 언제나 쓰는 것도 아니다. 좋은 시를 찾아 죽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시인이고, 조금은 서툴게 쓴 시일지라도 묵은 장아찌처럼 삶의 진실과 진정성에 푹 절여 있는 시가 좋은 시다.

 
양곡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