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숲산책-녹록하지 않은 '녹록지'

2015-05-21     허훈
◈말숲산책-녹록하지 않은 ‘녹록지’


‘녹록하다’는 ‘(흔히 뒤에 부정어와 함께 쓰여)만만하고 상대하기 쉽다거나 평범하고 보잘것없다’는 뜻이다. ‘사업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남편을 내조하기가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일평생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쌓아 둔 것들이 녹록한 재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따위로 쓰인다. 문제는 ‘녹록하다’를 줄여 표현할 때이다. ‘녹록치’로 해야 할까, ‘녹록지’로 해야 할까,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정답은 ‘녹록지’이다. 어간의 끝 음절 ‘하’가 아주 줄 적에는 준 대로 적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로 관용되고 있는 형식은 안울림소리(‘ㄱ’, ‘ㄷ’, ‘ㅂ’, ‘ㅅ’…) 받침 뒤에서 나타난다. ‘녹록하다’의 ‘녹록’은 안울림소리 받침인 ‘ㄱ’으로 끝나므로, ‘하’가 아주 줄어 ‘녹록지’의 형태가 된다. 따라서 ‘녹록하지 않은 사람’으로 표기하거나, ‘녹록하지’에서 ‘하’가 아주 줄어든 형태인 ‘녹록지 않은 사람’으로 해야 한다. ‘녹록치 않은 사람’으로 하면 틀린다.

‘생각하지’를 줄여서 쓴다면 ‘생각지’와 ‘생각치’ 중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 ‘생각지’로 표기해야 맞다. ‘하’가 아주 줄기 때문이다. ‘갑갑하다, 깨끗하다’도 마찬가지다. ‘갑갑하지 않다’를 줄여 ‘갑갑치 않다’, 또 이를 줄여 ‘갑갑찮다’로 적기 십상인데, 이는 어긋난 표기다. ‘갑갑지 않다’, ‘갑갑잖다’로 적어야 한다. ‘깨끗하지 않다’도 ‘깨끗지 않다’, ‘깨끗잖다’가 된다. ‘간편하게-간편케, 다정하다-다정타’와 같이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로 될 적에는 거센소리로 적는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