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달

2015-05-31     경남일보
강홍의 경일시단] 달 (도경회 시인)


보리누름에는

배고픈 달이 뜨곤 했다

끊겼다 이어졌다 먹뻐꾹 울음소리 까칠해질수록

금간 독에 물 빠지듯 쌀독에 쌀 비어가고

빈 가슴 가득 뻐꾹새 목쉰 울음만 출렁거렸다

저녁 어스름이 목에 메이던 나

먼 우물 길어다

물드무 넘치도록 찬 샘물 무었다

아린 목젖 스쳐오는 바람소리에 하염없이 허기 털어내던

여윈 물외꽃

아우를 닮아 빈혈을 앓았다

하얀 찔레꽃 송이송이 저며드는 밤

자물리는 보릿고개 접질러진 윤사월 뻐꾹새 먹빛소리

오늘도 배고픈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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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아직 덜 익었고 독 바닥은 바가지 닿는 소리만 요란한 보릿고개 시절, 뻐꾹새도 사연을 아는지 더 슬프게 울어 초승달도 주린 배를 움켜지고 가지 끝에 걸리었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저 가난의 우물로 부황기를 달래든 유년, 찔레꽃도 빈혈로 피었다. 전설이 되었고 옹골지게 사리로 남았다. 시로 남았다. (주강홍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