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환원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2015-06-01     경남일보
1925년 4월 1일 경남도청은 야반도주하듯이 진주를 떠나갔다. 일제는 이미 도청 관련서류를 삼천포항을 통해 야금야금 은밀히 부산으로 옮겨 갔다. 일본인 도지사도 기차를 타고 슬그머니 부산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경남도청 부산시대는 그렇게 이뤄졌다.

▶조선의 숱한 물자를 약탈, 일본 본토로 수송하고 자주 내왕하는 데에는 부산이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내륙의 진주는 8도 관찰사 중 하나가 있는 고도인데다 시민들의 저항의식이 심해 호시탐탐 이전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경남도청은 부산의 직할시 승격 이후 마산과 진주가 치열한 유치전을 펼쳤으나 결국은 공업신도시 창원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주인의 한이 서린 도청이 90년 만에 일부나마 돌아오게 됐다. 진주인들은 그 같은 역사적 사실을 ‘도청 환원’이라 부른다. 도청의 서부청사시대라 하고 관련조례도 그렇게 명문화하고 있지만 도청 환원은 진주는 물론 서부경남인의 자존심이다. 비록 반쪽짜리 도청이지만 ‘서부시대 개막’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 서부시대를 여는 청사 기공식이 오는 16일 열린다고 한다. 오욕된 역사를 되돌리는 역사적 순간이다. 일제의 만행을 우리손으로 원상회복시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90년이란 긴긴 세월을 돌아 비로소 환향하는 도청서부시대를 우리는 화려하게 꽃 피워야 한다. 오는 연말이면 완공될 서부청사는 제2의 진주발전 견인차가 돼야 한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