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 핀 능금꽃

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

2015-06-07     경남일보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아버지라 불린다. 유럽에서 교육이라는 마차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분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난한 사람의 구세주, 고아의 아버지, 새로운 학교의 건설자, 인류의 스승, 시인이며 인간이었고, 모든 일을 남을 위해 하고 자신을 생각한 적 없는 그의 이름에 축복있으라.’

페스탈로치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고아원과 농민학교를 세워 돈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많은 일을 했지만 모두가 남을 위한 것이었다. 그 분에 대한 찬사 중 인간이었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깊다. 누구나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라 불리며 살지만 아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퀴리 부인도 마찬가지다. ‘힘과 의지의 순수함, 자신에 대한 엄격함, 뚜렷한 주관,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이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부인이 라듐을 발견한 후 방사능 오염으로 숨지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누구나 소녀 시절은 기쁨과 절망, 비애가 공존해 가슴이 벅찰 나이다. 필자는 그 시절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며 모든 것과 단절하고 병실에 누워있었다. 육신의 병은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병들어 있던 늦가을 무렵 무심히 창밖을 보았다. 놀랍게도 환각인 듯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라도 열매를 맺겠다는 집념으로 꽃을 피운 나무를 보노라니 누군가의 시가 떠올랐다.

슬퍼마라! 시월에도 능금꽃은 피는 것이다!

한순간에 삶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깨달아지는 듯했다. 시월에 핀 한 송이 꽃은 소외된 생에 의욕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그때부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늦깎이로 피어, 찬서리에 시들고 말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면 꽃을 피우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시월에 핀 능금꽃은 내게 무엇이 안 되었음을 원망하지 말고, 무엇이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준비가 없음을 한탄하라고 가르쳤다.

나는 그날부터 더디 핀 능금꽃을 좌우명으로 간직하고 살아왔다. 좌우명이 자기를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라면 묘비명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의 묘비명도 이것이기를 소망한다.


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