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숲산책-'피란' 가는 일은 없어야

2015-06-22     허훈
◈말숲산책-'피란' 가는 일은 없어야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6·25 전쟁 65주년이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은 환희를 누렸지만, 5년 뒤엔 6·25란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다. 6·25전쟁 흑백 기록영화를 보면 피란민 행렬이 자주 등장하는데, 생각만 해도 처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전쟁 때나 쓰일 단어가 평시에도 고개를 내미니 아찔하다. ‘피란’과 ‘피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뜻을 정확하게 구별해 쓰지 않고 섞어 쓰면서 전쟁을 연상케 하는 피란 행렬이 떠올라 끔찍하다.

‘피난(避難)’은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의 의미이다. 여기서 ‘재난’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을 말한다. ‘피란(避亂)’은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감’의 의미이다. 여기서 ‘난리’는 전쟁이나 병란(兵亂), 또는 분쟁, 재해 따위로 세상이 소란하고 질서가 어지러워진 상태를 말한다. 즉 ‘피난’과 ‘피란’의 차이점은 ‘재난’을 피하여 옮겨 가느냐, 아니면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가느냐에 있다. 그래서 재난을 피하여 가는 백성을 ‘피난민’, 난리를 피하여 가는 백성을 ‘피란민’이라고 한다.

‘피난’이란 낱말은 여름철에 간혹 쓰인다. ‘홍수가 나자 임시 수용소는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앞 문장에서 ‘피난민’을 ‘피란민’으로 표기하면 맞지 않다. ‘피난’은 주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것에 쓰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붙여 살려 하는 피란민들은…천 리 길을 멀다 않고 고금도로 모여든다.≪박종화, 임진왜란≫ ‘피란민’은 임진왜란이나 6·25전쟁과 같은 데에 쓰인다. ‘피난지와 피란지’의 구별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다시는 ‘피란’ 가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