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행보

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

2015-09-02     경남일보
먼지 자욱한 담벼락에 몸을 지탱하며 한없이 오르는 담쟁이를 바라본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에도 아랑곳없이 높은 벽을 오른다. 맹목적인 뻗음이 아니다. 뜨거운 햇볕이 등을 녹일 기세로 달려들어도 오르는 것이 생의 목표인 양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담쟁이에 관심이 없다. 무심한 시선이 힐끗 스쳐갈 뿐, 치열한 생의 의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무성하게 덮여 있는 부분을 들춰보니 부착근으로 서로를 바짝 이어가고 있다. 혼자 앞서가다가도 살며시 뒤돌아보며 따라오는 어린 순에게 작은 손을 기꺼이 내민다. 혼자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게다.

목표를 지향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한다. 나도 목표를 세워 그것을 향한 정진과 혼신의 힘을 다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타이밍이 맞지 않다며 투덜댔다. 도전을 거듭하다가도 세상일이 녹록지 않을 때는 도리어 담쟁이의 부착근이 없음을 탓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오는 일종의 변명이었다.

간혹 본연의 모습, 자신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목표를 이루어 내는 경우를 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더디게 가더라도 올곧은 정신력만 있다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끈끈하다.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엄숙한 경계를 품고 있다. 하지만 담쟁이는 심장모양을 한 가슴이 따스한 식물이다. 온몸을 펼쳐도 손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왜소한 잎 앞에 그 단단한 벽도 시나브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보면, 담쟁이의 고독한 행보를 응원하고 있음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는다. 지금도 쉼 없이 오르고 있다.
이동이 (경남수필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