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 나만의 주파수

이지훈 (경상대신문 편집국장)

2015-09-08     경남일보
내가 글을 쓸 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잘 썼네. 근데 아직까지는 너만의 느낌이 없어서 아쉽다.” 한 줄, 한 줄 열심히 채워나간 결과물에서 나만의 ‘체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결점이 된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눈코입이 오목조목하게 잘생겼지만 매력은 없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공들여 준비했던 과제물이 벼락치기 과제물에 참패했던 적이 있다. 내 코를 짓눌렀던 친구는 노력파는 아니었지만 내가 봐도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다른 친구들이 야간 자율학습에 몰두하며 학원에 다닐 무렵 그는 미술학원에 갔다. 미대 입시를 준비한 것도 아니었던 그의 행보가 주변인들의 눈에는 시간 낭비로 비춰졌다. 그런데 그는 명문대학에 들어갔다.

타이트한 삶의 마라톤을 달리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패배를 경험할 것이다. 앞으로 경험할 패배를 모두 다 예상해 본다면 나아가기는커녕 고통스러워 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 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수의 ‘들러리’가 될지 모를 절대다수의 청년들에겐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캠퍼스에는 학생들로 붐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게 웃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학년이 높아 보이는 이들은 거의 웃지 않는다. 다년간 배워온 지식과 경험으로 풍부한 표정을 지어보일 법한데 외려 팍팍해 보이기 그지없다. 그들은 취업경쟁, 청년실업, 스펙, 그리고 최근의 탈(脫)스펙까지, 삶의 어느 한 부분보다도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넘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열정페이’ 자리 하나일 수도 있다.

매일 다짐하는 말이 있다. ‘나만의 주파수’를 만들자.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흔들리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 그득한 노력 위에 나다운 ‘체취’로 어우러질 독자노선을 말이다. 어깨 펼 여유도 없이 어디론가 바삐 가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이따금씩 고등학생 시절 미술을 좋아했던 그가 떠오른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굳이 연락을 해보고 싶진 않다. 다만 그때처럼 자신만의 시간에 연필과 붓을 들어 그리고 싶은 것들을 캔버스에 펼치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지훈 (경상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