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숲산책-'노견 없슴'은 없다

2015-10-05     허훈
◈말숲산책-'노견 없슴'은 없다

전셋돈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파트단지 게시판에 나붙은 억대를 호가하는 전세금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집값에 버금갈 정도니, 집 없는 설움 오죽하겠는가? 내 집 장만의 장밋빛 꿈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런데 세(貰)를 내면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요즘은 보증금에다 월세까지 조건을 내건다. 그러면서 ‘집을 깨끗이 수리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같은 내용을 적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이고 임차인을 기다린다.

‘전세금 ○○○만원, 집 새로 수리했슴.’ 어떤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전세계약 내용이다. 전세금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집을 깨끗이 고쳤다고 하니 눈길이 간다. 그런데 아뿔싸, ‘수리했슴’으로 적는 바람에 스타일 구겼다. ‘정말 수리했을까?’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수리를 했을지는 몰라도, 수리했다는 표기는 고장 나 있기 때문이다. 어문규범에 어긋난 낱말이 신뢰를 한순간 무너뜨린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지만,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세 광고를 내면서 집을 ‘수리했음’으로 해야 맞는데, ‘했슴’으로 표기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 도로 확장공사 현장을 지나치다 보면 ‘노견 없슴’이란 엉터리 표지판도 간혹 눈에 띈다. ‘노견’은 ‘갓길’로, ‘없슴’은 ‘없음’으로 표기해야 하는 데도 말이다. ‘했­, 없­’에 명사형 어미 ‘­음’이 붙은 말이므로 ‘했음, 없음’으로 해야 옳다. ‘했슴·없슴’과 혼동되는 것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습니다’를 붙여 ‘했습니다, 없습니다’로 한다. ‘했읍니다, 없읍니다’는 잘못된 표기다. ‘있다’가 ‘있음, 있습니다’로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했슴, 없슴, 있슴’은 없다. ‘노견 없슴’이란 말도 없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