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귀울음

2015-10-07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귀울음


 

어디로 갔을까

금방 올 듯이 모시옷을 벗어 놓고

시한부 생명과 바꾼 금방 녹을 시간 앞에

노래로 숲을 태우는 저 가객이 자넨가

우화(羽化)를 귀울음 우는 불청객은 누군가

- 공영해(시인)



속을 모조리 비워야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법. 칠년의 긴 시간동안 득음을 이룬 뒤 등을 찢고 우화한 매미의 빈 몸이 시인에 의해 모색되는 순간이다. 거꾸로 매달린 허물의 시간이 있기에 여름의 바깥은 저리도 푸르러서, 이를 진정 가객(歌客)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시한부 아닌 생이 어디 있으랴. 허물을 벗는 순간 겨우 십여 일 살다 갈 생인 것을 저 가객도 모를 리 없다. 불구하고 죽을 힘 다해 여생을 노래하는 미물에게서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늘 새로운 문장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사르고 싶지만, 이명처럼 내 안에서만 잉잉거리는 이 불청객 같은 나의 노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돌아보니 또 하나의 계절이 아코디언처럼 펼쳐져 있어, 속을 비운 갈대의 향연이 저만치 하얗다. /천융희·《시와경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