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숲산책-'서슴치'는 과감히 버려라

2015-11-02     허훈
◈말숲산책-'서슴치'는 과감히 버려라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김구의 ‘나의 소원’ 일부분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낱말은 첫 문장의 ‘서슴지’이다. ‘서슴치’가 아닌 이유는 으뜸꼴이 ‘서슴다’이기 때문이다.

용언(동사, 형용사)의 활용은 기본형에서 시작된다.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으면 활용형도 틀려진다는 얘기다. 이처럼 기본형을 잘못 파악해 잘 틀리는 낱말이 ‘서슴다’이다. ‘서슴다’는 ‘서슴지’로 활용한다. 이를 ‘서슴치’로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는 것은 ‘서슴하다’를 기본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서슴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를 뜻하며, 주로 ‘서슴지’ 꼴로 ‘않다’, ‘말다’ 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인다. “그 사람은 귀찮은 일에 나서기를 서슴지 않는다.”, “서슴지 말고 대답하라.”, “내 양말의 뒤꿈치에 큰 구멍이 나 있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서슴지 않고 계단을 밟고 올라갔을 거다.”처럼 쓴다. 기본형이 ‘서슴다’이기 때문에 ‘서슴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슴치’ 표기를 서슴지 않고 있으니 문제다. 이는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잘못 알고 ‘삼가하여’로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가다’가 기본형이기 때문에 ‘삼가여’로 표기해야 맞는 말이 된다. 이젠 ‘서슴치’는 서슴지 말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