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5)

2015-10-25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 (15)

먹이 때문에 많이 키울 수도 없었던 단 한 마리의 암탉이 낳은 계란반찬은 아버지의 밥상에만 올랐고 침을 삼키며 기다리다 조금 남은 계란찜을 서로 먹겠다고 강아지들처럼 뒤엉켜서 싸우다가 급기야는 어머니의 회초리 끝에서 진정되던 그 슬픈 밥상머리의 다툼. 첫 월급을 탔을 때 제일 먼저 계란 한 판을 사서 다 삶아놓고 거퍼 두 개를 못 먹고 울어버린 일을 아버지는 알 리 없다. 어렸을 때 벌써 어린 딸의 가슴에 싹 텄던, 가난 탓으로만 돌려버릴 수 없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부정을.

아버지가 명자언니네의 일만 떠보지 않았어도 이렇게 짠한 마음이 덜 맺혔을지 몰랐다. 아버지를 도외시하기로 작정했던 마음과 달리 양지는 그만 가슴 찌르는 한 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그들의 풍족이, 발전이 부러워 못 견디는 마음으로 꿩 대신 닭을 찾은 걸음이 아닌가. 양지는 아버지의 모순적인 행적을 그대로 묵과해 버릴 수가 없었다.

“언니가 살아있었으면 명자언니만 못했겠어요?”

그 가슴 저리던 상황은 차마 상기하기 싫은 지 아버지는 물만 거퍼 두 그릇이나 비웠다.

배설은 불쾌했다. 아버지란 존재는 이미 저항의 대상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 그 따위 치기를 부리다니. 공중으로 뱉었던 침이 얼굴에 되 떨어진 비루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최강 양지라는 존재의 인격은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난장이인가. 기획실장 최강 양지. 비록 가내공업 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회사지만 한 회사의 간부라는 명칭이 부끄러운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실장님, 전화 받다말고 뭐하세요?”

양지가 하는 양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듯 하양이 통화 중임을 환기 시켰다. 그래. 양지는 마지못해 수화기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로 설득해서 돌려보내나. 여자는 작지만 그 집의 주추란다. 여자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한 집안이 흥하고 망하고 한다. 어머니가 했던 말을 다시 해서는 효과가 없다. 이제 무슨 소리를 해서 저 애를 설득시키나, 목매기 소처럼 천방지축인 저 호남에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짓눌리는 듯 가슴이 답답했다.

“뭐하고 있노 퍼뜩 좀 안 받고. 남은 급해서 똑 숨이 넘어갈라 카느만”

“지금 있는데가 어데고?”

터미널과 회사 근처의 공중전화가 양지의 눈앞에 그려졌다. 자취방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 언젠가처럼 거기로 바로 가서 우렁각시처럼 저녁밥을 지어 놓고 깔깔거리며 놀래켰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일 년이 지났다. 잠잠했던 바람은 다시 가랑잎 마냥 호남을 태우고 소스라치기 시작한 것이다.

“어데는 어데라 집이지. 또 집 나가서 데불러 오라꼬 전화한 줄 알고 썽부터 난 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