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바닥論

2015-11-16     경남일보
[주강홍의 경일시단] 바닥論 
김나영 시인


나는 바닥이 좋다.

바닥만 보면 자꾸 드러눕고 싶어진다.

바닥난 내 정신의 단면을 들킨 것만 같아 민망하지만

바닥에 누워 책을 보고 있으면

바닥에 누워서 신문을 보고 있으면

나와 바닥이 점점 한 몸을 이루어가는 것 같다.

언젠가 침대를 등에 업고 외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식구들은 내 게으름의 수위가 극에 달했다고 혀를 찼지만

지인은 내 몸에 죽음이 가까이 온 것 아니냐고 염려 하지만

그 어느 날 내가 바닥에 잘 드러누운 덕분에 아이가 만들어졌고

내 몸을 납작하게 깔았을 때 집 안에 평화가 오더라.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도

알고 보면 모두 바닥이 부실해서 생겨난 일이다.

세상의 저변을 조용히 받치고 가는

바닥의 힘을 온 몸으로 전수받기 위하여

나는 매일 바닥에서 뒹군다.

----------------------------------------------------------------

낮은 것들만 모이는 그 곳은 더 낮을 수 없는 것들만 있다. 바닥까지 주저앉자 보지 못한 것들은 거기가 생상의 근본임을 잘 모른다. 중력이 드나들고 침묵의 언어들이 탄성으로 낮게 엎드려있다. 비상의 시작이다. (주강홍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