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공평합니다”

조옥래 (김해문화의전당 경영홍보팀장)

2015-12-09     경남일보
도심의 한 공연장. 지자체장 A가 앉고 멀찍이 떨어져 라이벌 B가 앉는다. 극장 안은 정적에 싸이고 한동안 침묵. 관객들은 둘을 번갈아 보며 마른 침을 삼킨다.

정치가 시민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정치는 생래적으로 불공평해 시민을 분열시킵니다. 원시 인류는 지식이 비슷한 상태에서 신체 등위만 달랐으니 키가 크고 작고 덩치가 있고 없는, DNA 변형에 따른 다양한 군상들로 모여 살았을 것입니다. 힘센 이는 우두머리로 정치를 행하고 그렇지 못한 이는 서민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개중에 불만 있는 이는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무리를 이끌고 거처를 옮겼을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정점엔 1인~소수 지배층만 존재한다는 사회학자 미헬스의 <과두제의 철칙>을 간파한 이는 엑소더스를 감행했을 것입니다.

경제도 불공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고래로 영특한 이는 화폐의 효용성을 남보다 빨리 알아서 서민을 부리고 노동에 동원해 더 큰 부를 창출했습니다.

소설 ‘허생전’의 허생은 대규모 투자를 받아 팔도의 과일이며 말총을 매점매석해 독점적 지위를 누림으로써 큰돈을 벌었습니다. 돈이 돈을 번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진리인 모양입니다. 현대에 와서, 인구의 10%가 지구상 부의 90%를 가졌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화는 공평합니다. 조선조, 국왕이 아악과 종묘 제례악으로 품격 있는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백성들은 양반을 풍자한 오광대며 농악 놀음으로 시름을 달랬습니다. 중세 유럽의 국왕과 귀족들이 고고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즐기는 동안 집시들은 자연과 자유, 사랑과 비탄을 노래했습니다. 문화는 형태는 다르지만 각계각층에서 스스로의 양식으로 공평하게 발전해왔습니다.

지위가 역전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와서 아악은 인류 문화유산으로 먼저 지정되고서도 자취를 감춘 반면 농악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주가를 한층 높였습니다. 클래식은 공연장의 골동품이 된 반면 집시의 랩소디는 TV, 라디오의 대중가요로 모습을 바꿨습니다.

문화는 왕과 민, 누구든 마음을 위무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모두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정치가 문화를 육성하고 공연장에서 화합해야 할 이유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경제는 자립할 정도면 족하나 문화는 한없이 높고 싶다.”
 
조옥래 (김해문화의전당 경영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