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늙어서 좋은 것은 호박뿐이라 전해라”

황숙자 (시인)

2015-12-27     경남일보
“육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할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알아서 갈 테니 재촉마라 전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좋은 날 좋은 시를 찾고 있다 전해라.”

요즘 ‘백세인생’ ~전해라 열풍이 불어 가사와 멜로디가 쉽고 재미있어서 따라 부르기에 은근 중독성이 강한 노래인데다 각종 패러디가 난무해 재미를 주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백세시대를 살고 있고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 덧없는 세월의 무상함에 늙는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나이듦의 즐거움을 전하고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야지 하는 반전의 익살도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은 전쟁통에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 길을 찾았다. 젊은 말은 빠르지만 늙은 말은 지름길을 알기 때문이다. 세월은 그저 흘러가지 않고 지혜를 가져다 준다.

올해 진주문협 새내기 회원이 되신 최 선생님의 연세는 여든 둘을 목전에 두었다. 과수원 일 틈틈이 취미로 혼자 시 쓰기를 하다 드디어 여든에 등단을 하고 시인의 꿈을 이루었다.

인근의 여러 백일장에 참가하고 입상을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 날마다 시를 쓰는 게 노년 인생의 보람이고 낙이라 하신다.

사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이고 본능이지만 어떻게 세월과 동고동락하는지 그 세월의 인생가치는 결국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노사연의 ‘바램’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세월의 무게만큼 묵을수록 깊은 장맛이 나야 한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쓸모없는 세월이란 없고 결코 허투루 가는 법이 아닌 모양이다.

우리 인생은 생로병사 산전수전을 통과의례로 두고 있고 신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몸 따로 마음 따로 그때가 바로 늙는다는 것인데 이왕 사는 거 긍정적·희망적으로 즐겁게 살 일이다.

고생이든 행복이든 지나간 것들은 모두 그리움이고 추억이 된다. 다시 밝아오는 새날이 반갑고 새해도 여전히 희망찰 것이다.

병상에 드신지 오래인 어머니는 종종거리며 수발 드는 딸에게 미안해 저 세상에서 왜 안 데리러 오는지 원망스러 “늙어서 좋은 것은 호박뿐이라 전해라”하신다. 아흔의 고개를 가파르게 오르시는 어머니께 깜찍하게 화답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황숙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