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58)

2016-01-03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58)

“현태 씨 나가. 저녁 먹고 가봐야지”

양지는 이제 혼자 있고 싶었다. 곁에 있으니 무의식중에 그를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남이야. 아무 거나 보여서 흉밖에 살 것 없는 남이야. 자신에게 일러 듣기곤 했지만 미아처럼 부지불식간에 그를 찾고 있는 자신의 눈길에 아연해지곤 했다. 양지는 다시 현태에게서 자신을 분리시키고 싶어 현관 쪽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주소가 어디라고 했지? 양지는 가만있고 내가 나서서 해결해 볼께”

병원 앞의 식당에 들어가 찌개백반을 시켜 놓고 나서 뒤집은 명함의 여백에다 볼펜을 대며 현태가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라, 책임전가 시키려고?”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너무 그렇게 뒤틀리게만 생각지 말고 일은 순리적으로 풀어야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현태 씨는 가만있어 줘. 그냥 막 짜증이 나”

“그러니까 내가 도우려는 것 아냐. 이런 일은 아무래도 나 같은 남자가 나서야 돼”

잠시 생각을 굴리는 눈치더니 현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뜻이었다. 가슴과 등을 막창 내는 듯 강한 눈빛이었다. 양지는 현태의 눈길을 빗겨 앞에 있는 물 컵을 집어 들었다.

“그건 안 돼. 엄연히 갈 곳이 있는 애를. 감정적으로 함부로 결정하면 안 돼. 요즘 신문지상에도 떠들썩하잖아. 고아수출국이라니”

“비약 하지 마. 어디로 멀리 도망쳐버리고 싶은 생각밖에는 아직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으니까”

주어야하고 가야한다는 것은 현태가 생각하는 상식일 뿐이다. 주지않는다 하고 가지 않는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어나는 아이도 정남이도 지금 현재는 하나의 물체에 불과할 뿐 자기 판단을 피력할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들의 장래에 필요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양지의 뜻에 따라 좌우 될 것이며 양지는 무엇보다 신중을 기해야할 필요가 있다. 양지의 머릿속에 이미 창규라는 존재는 없었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부터 먼저 한 병 주세요”

양지의 주문에 따라 소주와 김치며 나물 안주가 날라져 왔다. 먼저 현태의 컵에다 따르고 자신의 컵도 채웠다. 담배를 바꿔 잡은 손으로 현태가 먼저 술을 들었다.

“자, 건배. 현태 씨 오늘 정말 고마웠어. 이제 돌아가 쉬어야지”

가볍게 잔을 부딪고 기울이면서 양지가 말했다. 양지는 찬물에 발을 적시지 않고도 냇물 건너는 법을 터득한 상태다. 객관적으로, 크고 단순하게, 징검다리를 건너뛰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난은 어느덧 다 지나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