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숲산책-고무줄을 '늘이다'

2016-01-05     허훈
◈말숲산책-고무줄을 '늘이다'

어릴 적 여자아이들이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는 걸 보면, 짓궂은 남자아이는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고무줄을 빼앗아 길게 ‘늘리거나’ 연필 깎는 칼로 잽싸게 자르고 내빼곤 했다. 그런데 ‘늘리거나’는 ‘늘이거나’로 써야 맞다. ‘늘이다’는 힘을 가해 길이가 길어지게 하는 경우에 쓰기 때문이다. 고무줄을 길게 ‘늘여’ 끊어지기 직전인 팽팽해질 대로 팽팽해진 줄을 놓으면, 순간 본디의 길이대로 줄어들면서 여자아이들의 종아리를 강타하곤 했다. 그때 뻘겋게 부어오른 종아리를 보며 놀리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늘리다’는 언제 써야 할까. 먼저 ‘늘이다’의 뜻을 살펴보면, ‘본디보다 길게 하다.’, ‘선 따위를 연장하여 계속 긋다.’란 의미를 지닌다. ‘고무줄을 늘이다./엿가락을 늘이다./선분 ㄱㄴ을 늘이면 다른 선분과 만나게 된다.’와 같이 쓴다. 즉 고무줄이나 엿가락처럼 본디보다 길게 하거나 주로 ‘선’과 관련된 말을 목적어로 하여 사용한다. ‘늘리다’는 ‘물체의 넓이, 부피 따위를 본디보다 커지게 하다.’란 뜻이다. ‘주차장의 규모를 늘리다./우리는 넓은 평수로 늘려 이사했다.’와 같이 쓴다.

또 ‘늘리다’는 동사 ‘늘다’의 사동사(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로 ‘학생 수를 늘리다/시험 시간을 30분 늘리다./적군은 세력을 늘린 후 다시 침범하였다./실력을 늘려서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아라./살림을 늘리다./쉬는 시간을 늘리다.’처럼 쓴다. 고무줄은 ‘늘이고’, 학생 수는 ‘늘린다.’처럼 ‘길이는 늘이고, 넓이나 부피는 늘린다.’로 기억하면 된다. 늘어나는 것과 많아지는 것은 다르다. 헷갈리는 두 동사 ‘늘이다’와 ‘늘리다’를 두고 하는 말이다.

허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