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기획] 하늘에서 만난 경남 '진주성'

2016-02-04     강진성·곽동민기자
오후 햇살을 받은 진주성은 담담히 흐르는 남강에 비친 반영을 볼 때 더욱 아름답다. 지금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식처가 되어주는 진주성이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적의 호남진출을 철통같이 막아낸 관문이었다.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두 번에 걸쳐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 가운데 1차 전투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히는 진주성싸움이다.

진주성 안에는 수많은 사적지와 역사적 이야기가 내려앉아 있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의기사(義妓祠),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 김시민장군전공비와 촉석정충단비(矗石旌忠壇碑)가 나란히 서 있는 정충단(旌忠壇), 북장대(北將臺), 서장대(西將臺), 영남포정사문루(嶺南布政司門樓), 창렬사(彰烈祠), 호국사(護國寺) 등의 유적들이 있다. 이 일대가 사적 제118호로 지정돼 있다.

공북문은 진주성의 정문으로 임금이 계신 북쪽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문 지휘소인 서장대 옆에 위치한 호국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였으며, 창렬사는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이들을 기리는 사당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3대 누각 가운데 하나인 촉석루와 의기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의암바위는 진주성의 가장 큰 볼거리다.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1984년 진주성이 시민공원으로 단장되면서 개관했다.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탑의 형상을 빌려 진주성과 조화를 잘 이뤄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물관은 김시민 장군의 선무공신교서를 비롯해 임진왜란 당시의 다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경남지역에서 출토된 특색 있는 가야시대 유물이 많아 경주의 신라박물관, 공주·부여의 백제박물관과 견줄 만 하다.

강진성·곽동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