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질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2016-03-02     경남일보
궁중의 내관들은 쌓인 스트레스를 말로써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중궁궐의 내밀한 일들이 궁밖으로 흘러나가 온갖 루머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말을 옮기고 일러 바치는 일을 ‘고자질’이라고 했다. 내관들은 대부분이 생식기를 거세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그런 고자질을 막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신하들에게 신언패를 목에 걸고 다니도록 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일지니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어느 곳에 있든 편안하리라.” 신언패에 적혀 있는 경구이다.

▶정치는 말의 성찬이다. 전대미문의 긴 필리버스터가 8일 동안 우리 국회에서 행해졌다. 국회의원들은 몇 시간씩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냈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말로 인한 설화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그동안 말로써 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들었던 국회의원들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여당대표의 발언과 이를 세상에 알린 의원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진실성이 없는 허툰 말은 모두 고자질이다. 그래서 고자질은 세월이 가면 다 드러난다.

▶에드가 앨런 포어는 단편소설 ‘고자질하는 심장’에서 그의 심기를 건드린 노인을 살해하면서 죽어가는 노인의 심장박동 소리에 미쳐버린 살인자의 심리학적 초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정치는 말의 미학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양심이라는 것을 선거철마다 절감한다. ‘고자질’은 양심의 소리가 아닌 경우가 많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