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마르케스의 고독

2016-03-31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마르케스의 고독


나이 아흔에, 네가 오다니

이제 사랑할 시간이 없다

사랑할 시간만 남았다



-황영자(시인)



어느 봄, 은행나무 둥지 얼토당토않은 곳에 연록의 새싹이 주목된다. 나이 아흔에 운명처럼 네가 오다니 말이다. ‘백 년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늙은 주인공은 말한다.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생의 말미에서 꿈꾸는 낭만을 비현실적이라 하겠지만 사랑의 눈을 놓치지 않는 아흔 살 노인의 순수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여생임을 비로소 알게 되면 때로 사랑이란 낭만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고독 또한 참으로 행복한 침묵인 것이다. 사랑 후에 남는 그리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는 시인 백석이 연상되는 디카시다./ 천융희·《시와경계》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