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이홍식 (수필가)

2016-05-11     경남일보

평소 내가 좋아하던 분이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정해진 시간이 남아 있었고 한 번 더 할 수 있었던 터라 궁금했지만, 직접 만날 수 없어 묻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함께 일하던 사람으로부터 그 사연을 듣게 됐다. 이유는 임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자기 뒤를 이어 맡을 사람이 자기 눈에도 여럿이나 있었고 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부담스럽고 때로는 부끄러운 생각조차 들어 조금 일찍 자리를 내놓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사석에서 만나 같이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왜 일찍 그만두었느냐는 말에 “나와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 중에 내 자리를 이을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그들이 내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하겠나.” 내게 되묻고는 화장실을 나갔다. 그분의 뒷모습이 참으로 당당하다.

어떤 일이건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 허락한 시간만큼 일하다 그 자리에서 떠날 때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은 내가 아니라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 때이다. 떠날 때 떠나지 못하고 주변의 권유나 강압으로 마지못해 떠나는 사람은 얼마나 궁색하고 초라한 모습인가. 우리가 어떤 직책을 맡고 있었다면 자기에게 허락한 시간만큼 머물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주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떠나지 못하고 매달려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자기 것에 대한 상실로 생각하는 까닭에 없어진 것에 더 집착하게 된다. 떠나야 하는 일에 떠나지 못하고 내 일에 대한 집착만큼 우리 삶에 치명적인 집착이 또 있을까.

며칠 전 내게 그만둔 사연을 말해준 사람에게서 그분은 이전보다 더 좋은 일을 맡아 다른 곳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나를 내려놓으니 다른 하나가 저리도 쉽게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가진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포기와 버림을 아는 사람은 삶의 자유로움 속에서 언제든 새로운 것을 얻는다. 득실은 되풀이되는 삶의 섭리이고, 집착하면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 세상 섭리다. 버릴 줄 아는 사람은 구하지 않아도 다시 채워지는 것처럼 가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혜라면 버릴 줄 아는 것은 사랑이다.

이홍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