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이홍식 (수필가)

2016-05-25     경남일보

비 오는 날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며 서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내게 돈을 조금 달라고 했다. 거절할 수 없어 얼떨결에 주머니에 있던 동전 한 개를 꺼내 주었더니 대뜸 하는 말이 “주려면 제대로 주든지 주기 싫으면 말든지 오백 원이 뭐요”하는 것이다. 조금 황당했지만, 시비하는 것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주는 것도 아니고 안 주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그 돈으로 무얼 하겠냐는 뜻이다. 요즘 오백 원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나는 동전 한 개를 꺼내 주려 했으니 그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주려면 최소한 천 원은 줘야 한다. 그런 생각도 못 하고 달랑 동전 한 개를 주려고 했으니 그 사람 눈에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내 행동은 주고도 욕먹기 딱 알맞다.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지갑에서 천원을 꺼내주었다. 천오백 원을 얻은 그는 그제야 표정이 밝았다.

남에게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상대의 기대에 영 미치지 못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천금을 주고도 욕 듣는 일이 있고 밥 한 숟갈에도 감동하는 일이 있듯, 선행에는 크고 작음이 없는 것이다. 이왕 하려면 상대나 다른 사람이 봤을 때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 경우가 그런 것이 아닐까. 끝까지 오백 원 동전을 고집했더라면 상대는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화나게 했을 것이다. 처지를 바꾸어 상대가 나였다면 먼저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고 “에이 더럽고 치사하다”며 화냈을 것이 틀림없다. 내 마음을 이리도 잘 알면서 남에게는 그리 못했으니 내가 나를 봐도 정말 한심하다.

꼭 이 같은 일이 아니라도 다른 비슷한 일과 맞닥뜨릴 때 무언가를 하려면 제대로 해서 둘 다 잃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오늘 같은 일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더러 경험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만날 때는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은 쪽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도 만약 둘 중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돈을 잃는 게 낮다. 주고 욕먹는, 그래서 둘을 다 잃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소유하는 기쁨도 크지만,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은가.

이홍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