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하는 것

이홍식 (수필가)

2016-06-23     경남일보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라는 시가 있다. 세상에는 오래 보아야 하는 것들이 많다. 사람도 그냥 스치는 사람이 있고 한번 보고 마는 사람, 자주 보는 사람, 아니면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관계도 자주 보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이 드러나고 정들기 마련이다. 처음 서먹했던 사람도 오래 만나다 보면 양파 벗겨지듯 그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모습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다. 사랑도 상대를 처음 보는 짧은 만남에 빠져들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 느낌에 머문다. 익숙하면 익숙해질수록 친밀감만 더할 뿐 처음 느낌이 사그라지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감정으로 바뀔 때면, 세월이 흘러야만 덧입혀지는 이해의 마음이 보태져 시간의 보상을 얻는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래 보아서 좋은 것이 있고, 반대로 싫어지는 것이 있다. 볼수록 싫어지는 것은 겉만 화려할 뿐 실속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번쩍거리는 새것 기죽이는데 가장 좋은 약 처방이 헌것의 푸근함이라 했던가.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 대부분 오래 보았던 것이다. 남과의 관계도 오래 보아 정들었던 사람은 때로는 가족보다 정이 더 깊다. 짐승도 함께한 시간이 오래면 사람에게 드는 정 못잖다.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에는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내가 오래 볼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사랑의 마음이 싹트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병의 좋은 술이 만들어지는 건 재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듯, 그 안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내 책상 위에 삼십여 년 전 남한강 돌밭에서 얻어 오랜 시간 어루만져 손때 묻은 돌 하나가 있다. 돌을 쳐다보고 있으면 문득 그 안에 돌과 함께한 세월과 내가 들어 있음을 보고 미소 짓는다. 이제 오래 보며 정들었던 것들이 하나씩 우리 곁을 떠나려 한다. 내 손에 쥔 것이라도 놓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빠르게 달라지는 세월 탓이다. 오래 보아야 사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함께하는 것 안에서 언젠가 내가 머무르게 될 다음 세상을 생각하는 것일 게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많은 것에는 내가 함부로 지울 수 없는 그것만의 아우라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홍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