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할머니의 장맛

2016-07-21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할머니의 장맛


손끝에서 태어나는 장은

흙빛이어서 더욱 진실하다

맑게 끓는 뚝배기에서

냉이가 피어나고

세월이 피어나고



-강미옥(시인)



할머니의 손등이, 낯빛이 또한 흙빛이어서 더더욱 진실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서로가 참으로 친숙한 모습이다. 무엇이든 품어낼 것 같은 저 둥근 항아리와 그 곁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라. 한 생을 밀고 당긴 세월의 흔적이 각각 새겨져 있어 강한 울림을 주고 있으니 오랫동안 보고 있노라면 이든 저든 흙내 나는 정겨운 장면이겠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醬)은 갖은 정성과 더불어 햇빛과 바람으로 자연 숙성되는 최고의 발효식품이며 음식 고유의 맛을 내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고장마다 비결이 있다지만 역시 그 으뜸은 할머니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까 독을 활짝 열어 묵은 장을 아낌없이 퍼 담아 주는 손길이 아직 우리들 곁에 있으니 이 얼마나 살맛나는 세상인가./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