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성숙한 민주의식 잊고 있는 정치’

이재현 (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교수)

2016-07-27     경남일보
중국 최고의 지성 한샤오궁(韓少功·63)은 최근 한국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조금 더 자립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한국은 사회·문화적으로는 이미 대국’이라고 했다. 한국은 내적으로 민주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더욱 이성적으로 구현해 내는 과정에 있다. 민주화 과정에 ‘넓은 의미의 민주’ 때로는 ‘정제가 필요한 민주’에 대한 학습을 국민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민주주의 의식과 관련한 국민들의 사고는 첨단을 걷고 있는데, 현실정치는 아직도 그런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국가운영 질서감 주어야

올바른 가치가 왜곡되지 않는 양질의 삶을 국민이 향유하는데 정치지도자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라고 하는 것이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모두가 동반자적 관계와 공동 운명체 속에서 공공선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고, 국가구성원의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공동체가 당면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문제의 해결,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방향설정과 목표 제시, 그리고 국민의 삶 모든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정치지도자다. 그들에게 명확한 사고와 폭넓은 자질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정치현실을 어떻게 판단하고 진단하느냐의 문제다. 이와 관련한 보편적인 지적의 하나는 ‘정치지체(political lag)’다. 이것은 정당정치와 사회운동이 독특하게 공존하는 한국정치의 복합구도가 재생산돼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치지체’가 진행되는 과정에 사회구성원들의 일부는 탈정치화, 일부는 재정치화되고, 이와 동시에 한 개인의 정체성 내에서도 탈정치화와 재정치화 경향이 혼재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 하나가 정치적 존재감이다. 존재감은 본래 타인과 구별되는 정체성의 문제이고, 특이성의 집합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욕망에 충실하기보다는 상대적인 관계성에 기초해서 자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한계도 뚜렷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 있어서 정치적 존재감은 이러한 본래의 의미에서 많이 비껴 나 있다. 한국정치에서 리더십 제도화의 정도가 낮은 것은 36년간의 식민통치, 국토분단, 전쟁, 쿠데타, 급속한 산업화 등을 경험하면서 정치적·사회적 연속성을 지탱해줄 수 있는 기존의 기반 가치와 제도적 연속성은 거의 파괴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원의 배분 또는 생활조건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항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회차원의 자율적 메커니즘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권력의 역할은 항상 주도적이고 결정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향배는 사회내의 압도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가 대선 일변도의 언론적 논의로 진행되는 한 요인이다.



성숙한 민주의식, 한시도 잊으면 안 돼

리더십과 관련해 한국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정치지도자는 우선 정책입안 등 모든 정치과정에 성숙해진 국민적 역량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잊는 순간 자업자득 성격인 분열과 갈등의 정치 이외에 되돌아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둘째는 국민이 가지고 있는 역량에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뽑아내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역량추출의 문제를 지혜롭게 정치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진주교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