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0)

2016-07-27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0)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높은데서 누리고 사는 여인네는 많지 않다. 그늘에서 옹송그리고 사는 여인들의 고통을 저 가마 속 여인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 것인가.

역사 영화라도 찍는가 둘러보았지만 스탶진들은 보이지 않는게 조금 이상했으나 길섶으로 비켜서며 양지는 그쪽을 곁눈질해 보았다. 참 별스런 구경을 한다 여기는 순간 가마가 주춤 멈춰서며 양지를 향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 집 가는 길인데 여기서 만나네?”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이라 양지는 잠시 굳은 채 그냥 서있었다. 열린 가마문 안에서 명자의 활짝 웃는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양지는 저도 몰래 픽 실소를 날렸다.

치기스럽고 어이없는 광경인데 주인공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라니. 가마는 공을 들여서 만든 새것이다. 명자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 없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 놀라 바라보는 양지를 향해 명자가 다시 깔깔 웃어댔다.

“나라고 이런 것 몬타라는 법 있나. 뭔 시비고?”

웃음을 순간적으로 싹 그친 명자가 다그쳤다. 희화로 여길 수 없는 속 깊은 한의 비수가 찰나에 날아왔다. 일회적이고 기발한 퍼포먼스일지라도 이것은 양지네를 질리게 하는 시위성 행동이다.

“내가 저번에 한번 갈 거라고 했잖아”

“언니 내려. 할 말이 있어”

명자에게 말해놓고 양지는 그녀가 내려서 따라오거나 말거나 뒤돌아보지도 않고 산비탈로 연이어진 자드락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 같은 날 어머니 곁에 자신이 있어서 어머니가 당할 수모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몹시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입귀를 씰그러뜨린 채 째려보고 있던 명자가 못이긴 듯 일행을 돌려보내고 따라왔다.

서너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따라온 명자를 향해 왈칵 도전적인 행보로 양지가 돌아섰다.

“부탁하는데, 이런 짓 하고 싶으면 우리 아버지한테 해”

“너거 아부지 집에 없는 거 다 안다. 실권은 늬 오매가 다 갖고 좌지우지한다는 것도 다 알고”

실권? 좌지우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걸까. 명자의 말을 되뇌어보는데 피식 다시 실소가 밀려나왔다.

“난 언니가 무슨 말을 하러 가는지 잘 알면서 엄마를 만나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잘 아네. 그래 할 말 많다. 그 동안에 쌓인 한을 내가 안 이상 이 참에 싹 돌리 받을기다”

엄마가 아프다. 나쁜 병에 걸렸다면 우선 이 자리에서의 승강이는 피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양지는 그렇게 말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