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숲산책-입맛 당기고, 불씨 댕기고

2016-08-17     허훈
◈말숲산책-입맛 당기고, 불씨 댕기고

흔히 ‘불씨를 당기다’로 말하고, 또 그렇게 쓰곤 한다. 불씨를 당기다니? 어떻게 불씨를 당길 수 있단 말인가. ‘불씨’란 ‘언제나 불을 옮겨붙일 수 있게 묻어 두는 불덩이’ 또는 ‘어떠한 사건이나 일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이를 당길 수가 있을까. ‘당기다’와 ‘댕기다’의 뜻을 알면 ‘불씨’는 댕길 수는 있어도, 당길 수는 없다.

‘당기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다’(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당겼다), ‘입맛이 돋아지다’(지천으로 있는 집의 음식보다 역시 남의 집 음식이 당기는 것이었다), ‘물건 따위를 힘을 주어 자기 쪽이나 일정한 방향으로 가까이 오게 하다, 시간이나 기일을 앞으로 옮기거나 줄이다’(방아쇠를 당기다/8월로 잡았던 결혼 날짜를 7월로 당겼다)의 뜻을 지녔다.

‘댕기다’는 ‘불이 옮아 붙다 또는 그렇게 하다’란 의미로 ‘바싹 마른 나무가 불이 잘 댕긴다/그의 마음에 불이 댕겼다/그의 초라한 모습이 내 호기심에 불을 댕겼다’와 같이 쓴다. 따라서 어떤 일이 급격히 진행될 때 쓰는 표현으로는 ‘불씨를 댕기다’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 마음이 당기고, 입맛이 당기고, 그물을 당기고, 귀가시간을 당길지언정 불씨는 당겨서는 안 된다. ‘입맛 당기고, 불씨 댕기고’로 해야 바른 표현이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