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7)

2016-08-11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4 (227)

“니 셍이 일나서 퍼뜩 아부지 세숫물 좀 뜨신 새물로 푸라캐라”

새로 산 양동이에다 딸깍, 바가지를 담아 내밀며 엄마가 일렀다. 순간, 쾌남의 머리카락이 쭈뼛 해졌다.

“큰 세이 지끔 정재(부엌) 없나?”

“그기 무인 소리고?”

의혹에 찬 쾌남의 얼굴이 불현듯 건넌방으로 쏠리자 엄마의 얼굴도 표가 나게 바짝 굳어졌다. 큰언니 성남은 분명히 쾌남이 저를 가슴에다 꽉 끌어안고 초저녁잠이 들었었다.

무슨 생각이 스친 것일까. 엄마는 득달같이 건넌방으로 달려가 아무도 누워있지 않은 이불을 들치며 사방 구석으로 불안한 눈길을 굴렸다. 옷이 걸린 횃대며 벽장 고리짝까지 휙휙 뒤엎어서 언니를 찾은 엄마는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며 아버지가 있는 안방의 동정부터 살폈다.

“이 가스나가 기어코…”

울상을 지은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청을 건너오는 아버지의 기척이 났다.

“와, 무인 일로 아침부터 이리 시끄럽노?”

날카롭고 다부진 음성의 아버지 얼굴에는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음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엄마 역시 연극배우처럼 갑자기 온 얼굴에다 웃음을 바르며 아버지의 발걸음이 건넌방 쪽으로 더 나오지 못하게 대청 가운데서 막아섰다.

“아, 별 것 아이고마요. 쾌남이 야가 자다가 오좀을 쌌는디 성냄이가 새북겉이 일어나서 내 모리기 이불 빨러 냇물로 갔다내요. 어서 건너 가입시더. 아침 잡숫고 일찍 원행 나가신다꼬 안캤십니꺼”

엄마는 늘 그랬다.

곧 들통이 나고 말 일인데도 자식들을 감싼다고 일단 그렇게 거짓말부터 둘러댔다. 엄마를 잠시 경멸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보던 아버지의 음성이 쯔렁, 온 집안을 울림과 동시에 배가 불룩한 엄마의 몸이 뿌리치는 아버지의 손길에 밀려 맹꽁이처럼 마룻바닥으로 나둥그러졌다.

“내가 죽은 놈이가. 에미라카능기 그 따구로 감싸고도니 집구석이 이 모양이제!”

장작을 패는 도끼처럼 화난 아버지의 음성은 이미 어떤 지점에 닿아 있었다.

아버지 역시 언니가 잠잔 방이며 정랑은 물론 헛간이나 더그매 위까지 훑어 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동한 쾌남은 아버지가 듣게 밝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셍이가 또 전번 맨치로 웃뜸 묘포장에 낙엽송밭 매러 새북부터 갔능가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