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풍선

2016-09-07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치매

 

20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

3년 전, 아들이 앞서간 줄도 모른 채

하늘로 올라가다 전깃줄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치매



-김정수(시인)



생의 난기류에 떠밀려 끝내 고압선에 걸려버린, 한마디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이 사람이 바로 시인의 어머니다. 아니 우리의 어머니다. 삶이란 맑은 하늘에서도 뜬금없이 이처럼 복병을 만나기도 하는 것. 저만치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은 허공에 오색 기억이 매달려 있으니 아무래도 누군가 무심코 손에서 놓친 것이 틀림없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의 물체임을 인식하는 순간 시인의 발걸음은 한동안 저 지점에서 움쩍도 못했을 것이다.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충격)이, 그 여생에 있어 끝내 뇌출혈로 이어졌을 테다. 차츰 소멸해가는 기억의 끝을 잡고 간간이 아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노모. 어느 요양원 반 평 난간에 붙들려 허둥허둥 바람에 휘둘리고 있는 노모의 생 앞에서 시인은 문득 그녀의 사방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