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관계

2016-09-29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관계



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도 마다않고

매미의 시끄러움도 감내하고

알음알음 잘 견디더니

알알이 품삯을 맺었다



-임창연(시인)



그러니까 둥근 저것이 절대 저 홀로 열매 맺었을 리 없다는 말이다. 유난히 작열했던 태양 아래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음과 더불어 태풍에 때론 천둥까지 온몸으로 품어냈다는 말이다. 봄여름 지나며 나름 잘 견디어 온 목숨이 지천으로 물들고 있는 중이다. 작은 들꽃 하나의 목숨에서부터 틈새 웅크린 풀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돌아보며 감사해야만 하는 계절이 아닐까. 나의 나 된 것, 우리가 우리 된 것에 대하여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만 여물어 땅에 나뒹구는 노란 은행알들이 창구에 쌓인 돈으로 보이는 것일까.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길을 걷는다. 무심결에 신발 밑창으로 짓이겨져 역한 냄새를 풍기는 가을의 흔적을 오랫동안 견디어 볼 참이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