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의 말숲산책] 주차시키다(?)

2016-09-19     허훈
가족여행을 떠났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운전자인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아빠가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올게.”하며 먼저 내리게 한다. 그리곤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운전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직접 차를 주차하면서 주차시킨다고 하니 의아스럽다. 대리 주차를 부탁하면서 ‘주차시키다’라 표현해야 할 말을, 자신이 차를 세워 두면서 ‘주차시키다’로 말하니 영 어색하다.

‘주차하다’는 ‘자동차를 일정한 곳에 세워 두는 것’을 말한다. “그는 동네 골목에 주차하려 했으나 이미 빈 곳이 없었다.”와 같이 쓴다. 운전자가 직접 차를 세워 두려 했으니 ‘주차시키다’가 아니라 ‘주차하다’로 표현해야 맞다. 그렇지 않고 주차요원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면서 ‘주차시켜 주십시오’로 말한다면 적절한 표현이다. ‘-시키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다’의 뜻을 더하여 동사를 만드는 말이기 때문이다.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진정하느라) 심호흡을 서너 번 했다.”에서 바른 표현은 ‘진정하느라’로 쓰는 것이 맞다. ‘몹시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일을 가라앉히다’를 뜻하는 말은 ‘진정하다’이고, ‘진정시키다’는 ‘진정하게 하다’, 즉 ‘몹시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일을 가라앉히게 하다’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키다’는 ‘사동’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로 ‘하게 하다’란 의미를 가진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