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열병’을 안겨주는 억새
이수기 (논설고문)

2016-10-19     이수기
가을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자연은 단풍과 억새의 장관을 꼽을 수 있다. 단풍이 오색빛 화려함으로 가을을 꾸민다면 은빛 억새는 은은한 느낌으로 수수한 듯 황홀한 가을의 낭만을 담아낸다. 단풍과 억새밭은 가을의 매력 아닐까. 억새는 단풍의 화려함에는 비할 수 없어도 은근한 매력은 뒤지지 않는다.

▶단풍에 비해 일찍 시작, 늦게까지 볼 수 있다는 점도 억새만의 장점이다. “아-아, 으악새(억새) 슬피우니 가을 인가요/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여울에 아롱 젖은 이지러진 조각달/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는 일제 말엽 암울했던 시절, 김능인이 노랫말을 짓고 손목인이 곡을 붙여 고복수가 노래를 부른 ‘짝사랑’이다. 애절한 심경을 담고 있다.

▶경남의 억새밭 군락지는 창녕 화왕산, 밀양 사자평, 산청·합천 황매산이 손꼽힌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보송보송한 솜털 같은 부드러움으로 산 능선을 뒤덮는 억새밭은 하얀 파도가 인다.

▶은빛 억새와 함께하는 가을 산행은 백미로 꼽히면서 축제도 열린다. 한바탕의 가을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 눈앞에 어른거리는 은빛물결은 ‘가을의 열병’을 한아름 안겨주고 사라진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야속타 해야 할까…. 해질 무렵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가는 억새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건강한 노년의 자화상 같다.
 
이수기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