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그 아이

2016-10-27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그 아이

노란 탱자

돌팔매질하며

얼쩡거리던 날



괜스레 그 아이 생각난다



-이채구(시인)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이유는 뭔가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패트 빅셀). 기억의 내부에 저장되었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 ‘추억’말이다. 오늘은 저 울타리에 매달린 노란 탱자 속,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그 아이가 불쑥 생각났던 것일까. 그래, 어쩌면 내(우리) 유년의 첫사랑 같은 이미지인지도 모르겠다. 얼쩡거린다는 시어가 뭘 의미하는지 가슴이 먼저 왈칵 느끼는 걸 보면 말이다. 주위를 맴돌다 혹여나 맘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아닌 척할 방법밖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손 가득 쥐었던 노란 탱자는 노을 속으로 힘껏 던졌겠지. 땅거미 지는 길따라 괜스레 돌부리만 걷어찼겠지. 시큼 떨떠름한 탱자 향기 탁탁 털며…./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