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목적, 선의의 피해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

2016-11-01     경남일보
2002년 11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진행된 프로축구 1부 리그, 시즌 우승이 확정된 AS 아데마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전년도 우승팀 SOE는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공을 릴레이 백패스하여 자기 골문으로 차 넣었다. 이후 킥오프할 때마다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여 SOE가 평균 36초당 한 골씩 자책골을 넣는 동안 상대 팀은 공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149:0으로 경기가 끝났다. 시즌 내내 불공정 판정에 시달렸다는 SOE의 보복성 항의 표시 이면에 건전한 스포츠 정착을 위한 선의의 목적이 있었다 치더라도 그 방법 자체가 불건전하며, 더욱이 관중 우롱과 축구 모독이라는 선의의 피해를 유발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렵다.

시행 한 달을 넘기면서 관련 보도가 늘어나고 관심도 커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 법)은 청렴한 공정사회를 추구한다는 선의의 목적을 가졌지만 각종 선의의 피해도 우려되거나 이미 감지되고 있다. 법 시행 여파로 파생되는 식당업계, 축산 농가, 양식업계, 화훼 농가 타격 등 경제적 문제에 모든 행위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봄으로써 ‘인간관계 위축, 인정미 실종, 미풍양속의 사막화’라는 사회적 문제도 대두된다. 란파라치 학원까지 생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법이 뇌물로 인한 애꿎은 불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마련된 장치이니만큼, 순수한 선의의 행위가 불이익을 자초하는 일이 없게 대비하면서 법의 선의가 실현되도록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 법이 필요한 근본적 원인과 관련하여 과거의 현실을 반영한 문학 속 장면을 상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박인로의 가사 ‘누항사’에서 밭 갈 소를 빌려 주겠다는 말을 믿고 찾아간 가난한 이웃에게 ‘목 붉은 수꿩 안주에 갓 익은 삼해주’를 대접한 건넛집에 빌려 주기로 했다며 문전박대하는 소 주인,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서 마름인 점순 아버지에게 뇌물을 주면 소작지를 후하게 받고 안 주면 뺏기는 사람들, 권정생의 ‘몽실 언니’에서 가난한 환자들이 자선병원의 치료를 받으려고 길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가 죽어가는 동안 돈 많은 환자들과 직원 사이에 ‘뒷구멍’으로 이루어지는 진찰권 거래….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