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포클레인

2016-11-09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포클레인


힘센 자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강제로 이주당하는 풀씨 가족

조심해라, 다음엔

당신 차례다

-김정수(시인)



공익사업으로 또는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일생 꾸려왔던 주거지와 생계수단을 어처구니없이 수용당하는 주민들을 풀씨에 비유하고 있다. 건설 중장비의 외형에 비록 무참히 짓밟히는 듯해도 시인은 잡초의 근성을 믿고 있음이 틀림없다. 발길 끊이지 않는 보도블록 틈을 낮은 보폭으로 질주하는 뭇 풀들과 아찔한 절벽에서 위태롭게 숨을 잇는 끈질긴 생명들이 지난 봄, 지지난 봄에도 도화선처럼 번지던 광경을 시인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약한 자를 향하여 응원하는 시인의 불끈 쥔 주먹이 느껴지지 않은가. ‘지구상의 모든 갈라진 상처는 시인의 심장으로 돌진하라’(괴테)는 그 사명감으로 한 장의 붉은 딱지를 던지는 것이다. ‘조심해라, 다음엔 당신 차례다.’/ 천융희·시와경계 편집장